본문 바로가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 5.환희와 열정에 대하여

내 형제여, 그대에게 덕 하나가 있고, 그것이 그대의 것이라면, 그대는 그 덕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다.

물론 그대는 그 덕에 이름을 지어주고 쓰다듬고 싶을 것이다. 그 덕의 귀를 살짝 잡아당기고 장난도 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보라! 이제 그대는 그 덕의 이름을 대중과 공유하게 되었고, 그대의 덕으로 그대는 대중이 되고 가축떼가 되어버렸다!

"내가 덕을 소유 할 수 있을까? 사랑은 결국 하는것이기에, 감사는 결국 하는것인데, 내가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나 감사한가 이 뜨거운 가슴에대한 환희와 열정을 대중에게 말함으로써 나의 사랑과 감사는 비교되며, 식어버리게 된다."

 

그대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내 영혼을 고통스럽게도 하고 감미롭게도 하는 그것, 내 내장의 굶주림이기도 한 그것은 아직은 발설할 수도 없고 명칭도 없다."

"나의 사랑과 감사를 뿜어냈던 그 마음은, 나를 때론 힘들게 하며 다시 감미롭게도 하는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지만 항상 진행되고 나아가기에 이름을 지어 한계를 만들 수 없다."

 

그대의 덕이 친숙한 이름으로 부를 수 없을 만큼 드높기를. 그리고 그대가 그 덕에 관해 말을 해야만 한다면 더듬거리게 되더라도 부끄러워 말기를.

그러니 말하라, 더듬더듬 말하라. "이것이 나의 선이며, 나는 이것을 사랑한다. 전적으로 내 마음에 들며, 나는 이러한 선만을 원한다. 
나는 그 덕을 신의 율법으로서 원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규범으로서나 인간의 필수품으로서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 덕은 내게 대지 저편으로나 파라다이스로 안내하는 길잡이여서도 안 된다.

내가 사랑하는 덕, 그것은 지상의 덕이다. 그 덕은 별로 영리하지 않으며, 거기엔 만인의 이성이라는 것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 이 새가 내 곁에서 둥지를 틀었으니, 나는 이 새를 사랑하고 보듬는다. 이 새는 지금 내 곁에서 황금알을 품고 있다."

이렇게 그대는 더듬더듬 그대의 덕을 칭송해야 한다.

"나는 나의 사랑과 감사에 다시금 떠올리며 이것을 말해야 한다면, 이건 나의 욕구이자, 목표이자, 삶이다. 나는 이것으로 천국과 환생을 원하는 것도, 모두가 이것을 따라야 하는 법칙이 아닌 신념으로, 파라다이스가 맞지만? (아직 버리지 못한게 있는건지) 목적으로서 파라다이스가 아닌 길로자체로 파라다이스이다.
이러한 사랑과 감사는 속세에서 보기엔 멍청해 보이고, 계산적으로는 손해가 많아 보인다.(순간 에너지가 떨어짐을 느낀다.)
이렇게 나의 감사와 사랑을 곱씹으며 정의되지 않은 나의 진행되는 마음을 말해야 한다."

한때 그대는 열정을 지녔었고 그것들을 악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오로지 그대의 덕만을 갖고 있을 뿐이고, 그것들은 그대의 열정에서 자라났다.

"한때 나는 나의 모든 에고를 걷어내기 위해, 마음속 떠오르는 생각들을 분리하고 마음에들지 않은 생각들은 거두고 마음에 드는 생각들로 가득채우는 중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 열정이 있다.
번외로,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 한국으로와서 몇 년 후 더 이상 영어가 떠오르지 않은 상태가 될지 궁금하다. 아는 분이 계시다면 알려주세요. 이 시간은 우리의 무의식을 통째로 바꾸는 시간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대는 이 열정의 심장부에 그대의 최고 목표를 세웠다. 그러자 열정이 그대의 덕이 되었고 환희가 되었다.

그대가 신경질적인 자 혈통이라 할지라도, 음탕한 자나 광신적인 자나 복수욕에 불타는 자 혈통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대의 열정은 모두 덕이 되었으며, 그대의 악마는 모두 천사가 되었다.

한때 그대는 그대의 지하실에 거친 개들을 길렀다. 그 개들이 종국에는 새로 변하고 사랑스러운 여가수로 변했다.

그대는 그대의 독으로 그대에게 향유를 빚어 주었던 것이다. 비탄이라는 그대의 암소에서 젖을 짜내었던 것이다. 이제 그대는 그 젖 가슴에서 나오는 달콤한 젖을 마시고 있다.

앞으로는 그대에게서 어떤 악도 더는 자라나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여러 덕들 사이의 싸움에서 자라나는 악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직 모두 천사가 되지 않았지만, 그 길을 걸으며 문득문득 떠오르는 나의 생각들을 바라보며 나의 과거를 만난다. 이해하지 못했던, 그때의 최선의 선택이었던 나의 선택들, 모든 과거들을 만나 이해하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통일하게 된다."

 

내 형제여, 그대가 행운을 잡는다면 단 하나의 덕만을 가질 뿐, 다른 덕은 갖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하여 그대는 더 가볍게 다리를 건너게 된다.

"아마 자신과 바라보는 자를 만들고, 바라보는 자를 없앤 후, 다시 모두가 자신이 되는 단계인거 같다. 나는 아직 가지 못했다."

 

많은 덕들을 갖추는 것이 돋보여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힘든 운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가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여러 덕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되고 싸움터가 되는 것에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정의와 용기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진다. 정의로움은 대중적인 것을 위해야 하며, 용기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한다. 당신이 상반된 덕을 상황에 맞게 보여줄 수 있지만, 동시에 보여줄 수는 없다."

내 형제여, 싸움과 전투는 악한 것인가? 하지만 이런 악은 필연이다. 그대의 덕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질투와 불신과 비방은 필연이다. 

"얻고자 하는것은 현재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얻고자 하는 것은 이미 당신은 생각하고 있다. 그게 무엇이든, 계속 생각하게 된다면 언젠가 욺켜지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선택일 뿐 거기에는 악도 선도 전투와 싸움도 없다. 단지 자신이 선택했을 뿐."

 

보라, 그대의 덕 하나하나가 최고가 되려고 얼마나 열심인지를. 그대의 덕은 자신들의 전령으로 삼으려고 그대의 정신 전체를 원한다. 분노와 증오와 사랑에 있어서도 그대의 힘 전체를 원한다.

어떤 덕이라도 다른 덕을 질투한다. 그런데 질투란 끔찍한 것이어서, 덕들도 질투 때문에 몰락할 수 있다.

질투의 불길에 휩싸인 자는 결국 방향을 돌려, 전갈처럼 독침을 자기 자신쪽으로 향하게 되니.

아, 내 형제여. 어떤 덕이 스스로를 비방하고 찔러 죽이는 것을 본적이 없단 말인가?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그대는 그대의 덕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대가 그 덕들로 인해 몰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선택한다. 무엇이든, 나태든 열정이든, 부자든 가난이든, 어떤 방향과 상관없이 선택하게 된다. 선택한다는 것은 현재를 넘어선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힘들다가 휴식을 선택하고, 휴식하다 힘든 것을 선택하고, 우리는 이렇게 어떠한 덕이든 선택하게 된다. '스사프스의 형벌'은 끊임 없이 돌을 굴리고 올라가는 형벌을 받은 시사프를 일컫는다. 우리는 이러한 굴례와 비슷하다. 어떠한 덕이든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휴식은 편안함과 나태를, 열정을 고통과 도전을 그러니 우리는 모든 덕을 사랑함으로써 인생의 모든 부분을 사랑하게 된다.

또한 끊임없는 선택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한한 생명 에너지를 소비하는것과 같다. 

 

번외로, 똑같은 식단(건강하지 않은 식단)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집단 A는 음식의 건강하지 못한 점을 강조하며 식사를 하게하고, 다른 한 집단 B는 유쾌하고 즐거운 상황에서 식사를 하도록 했다. 결과는 모두가 예측 가능하지만 A는 면역체계는 기존보다 몇 퍼센트 하락했고, B 집단은 건강하지 않은 식단임에도 불구하고 면역 체계가 개선됐다.

이 논문의 면역 체계의 변수가 얼마나 정확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이 위의 니체의 철학과 매우 닮았음은 알 수 있다.

 

당신은 같은 삶을 살더라도, 모든 인생을 사랑할수도, 모든 인생을 사랑하지 않을수도 있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